육군/병장(20100901)

우리나라 위인들의 명언

헛바람 2010. 8. 18. 19:18

세종대왕

고기는 씹을수록 맛이 난다. 그리고 책도 읽을수록 맛이 난다.

다시 읽으면서 처음에 지나쳤던 것을 발견하고,

새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백번 읽고 백번 익히는 셈이다.


남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고,

위엄과 무력으로 엄하게 다스리는 자는 항상 사람들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어찌 나 같은 사람으로서 책을 백 번도 안 읽겠는가?


우리나라의 언어와 발음이 중국 것과는 달라서 글자를 가지고는 서로 통하지 않는 까닭에,

공부하지 못한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마침내 자기들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자가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는데,

사람마다 쉬이 익혀 일상생활에 편하게 쓰도록 하려는 것뿐이다.



이순신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거이 행동하라.


만일 골라잡은 군졸들을 勇智之將에게 맡겨 평소부터 정세에 따라 잘 지도만 하였다면

이처럼 큰 사변을 당하지는 않았사오리다.


바다에 호국의 충성을 서약하니 어룡조차 감동하여 꿈틀거리고,

태산에 맹세하니 초목도 다 알아채더라.


분별없이 행동하지 말고 산처럼 무겁고 조용하게 일을 해야 한다.



정약용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外侵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의한 민심의 離反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재물을 절약해 쓰는 데 있고, 節用하는 근본은 검소한 데 있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해야 백성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검소하게 하는 것은 목민관이 된 자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대중을 통솔하는 방법에는 오직 위엄과 신의가 있을 따름이다.

위엄은 청렴한 데서 생기고 신의는 충성된 데서 나온다.

충성되면서 청렴하기만 하면 능히 대중을 복종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을 천히 여겨서는 안 된다.

기술이 인간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대단히 크다.

이를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는 것은 인륜을 가진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소유하고 그걸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있다.

우리는 낙후된 실정을 직시하고 어서 빨리 서양의 근대과학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를 마실 줄 모르는 민족은 망한다.


오직 독서만이 위로는 옛 성현을 좇아 함께할 수 있게 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길이 깨우칠 수 있게 하며,

신명에 통달하게 하고 임금의 정사를 도울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짐승과 벌레의 부류를 벗어나 저 광대한 우주를 지탱하게 만드니,

독서야말로 우리들의 본분이라 하겠다.


대체로 남의 흠을 꼬치꼬치 찾아내어 새로운 견해를 만들어내고자 기를 쓰는 것은

본디 큰 병통이다.

그러나 자신의 지혜와 생각을 버리고 무조건 옛 견해를 추종하는 사람 또한

참된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

배우는 자가 이전 학자들의 학설에 진실로 의심스러운 곳이 있을 경우 성급하게 별도의 견해를

낼 것도 아니요, 성급하게 그대로 따를 것도 아니다.

모름지기 자세히 연구하여 말한 사람의 참뜻을 깨치도록 반복해서 살피고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혹 의문이 환하게 풀리면 가만히 한번 웃으면 그만이고,

혹 그 잘못이 점점 더 발견되더라도 또한 공평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순리로 해석하여,

“아무개는 그렇게 보았으므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니,

이제 이렇게 본다면 이렇게 말해야 마땅하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찌 겨우 조그만 한 부분을 보고서 보물을 얻은 것처럼 좋아 날뛰면서

옛 사람을 배척하고 자기를 내세우기를 거리낌 없이 해서야 되겠는가.


김구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 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기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께서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오직 대한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물으시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세 번째 물으셔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내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대답할 것이다.


얼굴이 잘생긴 것은 몸이 건강한 것만 못하고, 몸이 건강한 것은 마음이 바른 것만 못하다.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이 국민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되지 못하여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민족의 철학에 끌리어, 사상과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하고

남을 의뢰하고 저희끼리는 추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안중근

국가존망의 위기를 보면 천명을 받은 것같이 생각하고, 이익을 보면 먼저 정의를 생각하라.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 속에 가시가 생길 것이다.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없으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人無遠慮難成大業


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서 적을 무찌르려 의지를 쌓았더니 이제야 뜻한 대로 좋은 때를 만났구나. 때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때를 만나는가? 북쪽바람 차기도 하나 내 피는 뜨겁구나.

쌓였던 원한을 한번 털어놓으면 어김없이 꼭 도적을 잡으리라. 우리 동포 형제자매들아,

이 공업을 잊지 말라. 만세, 만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황금 백만 량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같지 못하다.


안창호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없을 것이다.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아름다운 이성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얼굴을 보고 싶거든 정면으로 당당히 보고 옆에서 엿보지 마라.


성격이 모두 나와 같아지기를 바라지 말라.

매끈한 돌이나 거친 돌이나 다 제각기 쓸모가 있는 법이다.

남의 성격이 내 성격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일에 더 열중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나는 일본의 실력을 잘 안다.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나라다.

나는 일본이 무력만한 도덕력을 겸하여 갖기를 동양인의 명예를 위해서 원한다.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기를 원치 않고 좋은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이웃인 대한을 유린하는 것은 결코 일본의 이익이 아니 될 것이다.

원한 품은 2천만을 억지로 국민 중에 포함시키는 것보다

우정 있는 2천만을 이웃 국민으로 두는 것이 일본의 득일 것이다.

내가 대한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동양의 평화와 일본의 복리까지도 위하는 것이다.


유관순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잊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 없습니다.


오오! 하나님이시여, 이제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원수를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로 말미암아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같이 하시고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대한민국 만세! 대한독립 만세!


윤봉길

丈夫出家生不還

사내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고향에 계신 부모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강보에 싸인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 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데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유서)


주시경

한 나라가 잘 되고 못 되는 열쇠는 그 나라의 국어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있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울 때 선생님이 한문을 한자음대로 한 번 읽어주시는데,

이 때는 아이들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여 멍하니 그대로 앉아 있다가

다음에 선생님이 우리말로 새겨 주시어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이같이 우리말로 하면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을, 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읽고,

그 다음에 우리말로 되풀이하는가 하고 의심을 품게 되었고, 또 우리글이 있는데 왜 이토록

어려운 한문만을 배워야 하며, 우리말을 그대로 쉽게 적을 수 있는 우리글은 왜 쓰지를 않나

하고 골똘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한글을 연구하게 된 동기다.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다.

한 말을 쓰는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줌으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되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다.

그러므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려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려지나니라.


불의에 편승하여 영달을 꾀하려 하는 것은 이 나라 국민으로서 있을 수 없는 행위다.



한용운

종이라고 하는 것은 치면 소리가 난다.

쳐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버린 종이다.

보통 사람이란 사랑하면 따라온다.

사랑해도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버린 사람이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서,

또한 스스로가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자존성은 항상 탄력성을 가져 팽창의 한도 즉 자존의 길에 이르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 것이니, 조선의 독립을 감히 침해하지 못할 것이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른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용기 있고 슬기로운 사람 앞에는 역경 따위가 있지 않다.


함석헌

힘이 없고, 생각이 아니 나고, 지식이 떨어지고, 꾀가 모자라는 것은 정신이 죽었기 때문이다.


젊어서부터 노인처럼 조로해 버리면 못써. 젊었을 때는 좀 엉뚱한 짓을 할 수 있는 게 젊은이지.

 

구멍가게 보는 사람 회계하듯 일점일획도 안 틀리게 딱 맞추려고만 하다가는 적게는 성공할지 몰라. 하나의 지아비로서 주부로서 성공할는지 몰라.

하지만 인간으로서, 하나의 역사의 사람으로서는 실패하기 쉽다.


말씨란 말이 있지만 말이야말로 씨() 같은 것이다.

그것은 지나간 것의 결과이자 장차 올 것의 원인이다.


‘하면 안 된다’도 알아야 한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한반도는 3면에서 다가드는 세 세력에 두루 싸여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서쪽의 중국과 북쪽의 만주와 동쪽의 일본이다.

이 위치는 다이너마이트같이 능동적인 힘을 가지는 자가 서면 뒤흔드는 중심이요,

호령하는 사령탑이요, 다스리는 서울일 수가 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일찍이 이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억세지 못한 자가 그 자리에 선다면 그때는 수난의 골목이요 압박의 틈바구니다.

우리는 불행히 그 뒤의 것이 되었다.